기업인들이 우리를 구출하러 오고 있다. 2017년 영국의 스타트업에서 50세 이상 창업자가 50세 미만의 창업자보다 사람을 더 많이 고용했다. 미국에서는 55~65세 사람들이 20~34세보다 사업을 시작할 가능성이 65퍼센트 더 높다. 이들은 모두 취미생활을 하거나 명함을 만들기 위한 가짜 고문들이 아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따르면 나이 든 기업가들은 실제로 젊은 기업가들보다 성공률이 훨씬 높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 스타트업의 창업자 평균 연령은 45세다. 만약 소셜미디어를 제외하고 생명공학을 포함한다면 그 나이는 47세로 올라간다.
HBR은 “만약 당신이 두 명의 기업가와 마주쳤는데 나이 외에 아무것도 모른다면 평균적으로 당신은 나이가 더 많은 기업인에게 투자하는 것이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물론 젊음이 총명의 묘약이 될 수 있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제프 베조스, 세르게이 브린, 래리 페이지 등은 모두 아주 어렸을 때 사업을 시작했고 획기적인 역사를 썼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성숙해지는 것도 중요하다. 애플이 가장 수익성이 좋은 상품인 아이 폰을 출시했을 때 잡스는 52세였다. 아마존은 미래의 시가총액 성장률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베조스의 나이는 45세였다. 모든 사람이 이들처럼 새로운 유행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와이콤비네이터(미국 최대의 스타트업 발굴 투자회사)의 창업자인 폴 그레이엄은 ‘투자 대상자를 자르는 기준이 32세’라고 말했다.
나이 든 사람을 거부하는 벤처캐피털들은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 이러한 노년의 ‘삶의 역동성’은 적절한 시점에 찾아온다. 평생직장이 사라졌다. 연금이 노후에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자금에서 젊은 세대에게 우아하게 자리를 내주는 충직한 직원들에 대한 보상으로 변한 것이 바로 1970년대다. 기대 수명이 늘어나는데도 불구하고 조기 은퇴가 굳어졌다.
오늘날, 연금이 더는 쌓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수명이 길어지는 추세는 많은 연금 제도를 적자 상태에 빠뜨렸다. 뉴욕시는 현직 경찰보다 퇴직 경찰이 더 많고 현직 경찰의 임금보다 전직 경찰의 연금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 2017년 한 보고서는 뉴욕시 예산에서 연간 연금 보조액이 얼마 안가 사회 복지 사업비를 제치고 두 번째로 큰 지출 항목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민간 연금 제도는 근로자들이 퇴직 후 고정 수입을 얻는 확정급 여형에서 미래 수익이 훨씬 덜 보장되고 근로자들이 위험을 부담하는 확정기여형으로 전환됐다. 언제 종말을 맞이할지 모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쓸 수 있는 것보다 적게 소비하여 경제에서 통화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반응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적은 연금을 받는다. 그것이 불안에 대한 처방이다. 정부는 늘어나는 노인들의 표를 자극할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는 기대치를 잘못 팔았던 국민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의식하며 연금 수령 나이를 높이기 위해 조심스레 움직였다. 금융위기 이후 18개 OECD 국가가 정년을 늘렸다. 그러나 그 상승률은 기대 수명의 증가 예상치를 따라가지 못한다. 분명한 답은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래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간에 나타나는 아주 흥미로운 차이점들을 살펴보면 이것이 완벽하게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55~64세 사람들의 78퍼센트가 현재 일하고 있다. 이 수치는 스웨덴이 76퍼센트, 아이슬란드가 84퍼센트다. 그러나 영국과 호주는 64퍼센트, 미국은 62퍼센트에 불과하다. 이들 국가에서 이용 가능한 일자리는 큰 차이가 없다. 영국은 현재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실업률을 누리고 있다. 또한 국민의 능력이나 건강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없다. 만약 영국이 뉴질랜드의 고용률에 도달한다면 GDP를 연간 거의 9퍼센트 더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장수 경제학자인 앤드류 메이슨과 로널드 리는 독일, 일본, 스페인 같은 ‘고령화 국가’에서 국민이 2010~2050년에 은퇴를 10년마다 2.5년씩 늦춰 간다면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충분히 상쇄할 것으로 계산했다. 육체적으로 힘든 직업들이 감소하고 있으므로 만약 일자리만 찾을 수 있다면 체력이 뒷받침되는 사람들이 더 오래 일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