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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일관성을 요구하지 말자

시크릿하우스 2021. 8. 2. 09:52

정의 중독의 대상은 타인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정의를 주장하거나 강요하는 것은 결국 누군가를 구속하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상대에게 명확한 잘못이 있다거나 자신이 책임지고 대처해야 하는 경우, 감독 책임이나 지도 책임이란 이름 아래 종종 정당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권력형 갑질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상사나 선배의 입장에서 경험이 부족한 부하 직원이나 신입 사원을 보면, ‘왜 시키는대로 하지 않는 거지?’ ‘내가 신입일 땐 저거보단 잘했는데’ 하고 속이 터질지도 모른다. 만약 상대를 위해 가르쳐 주려던 의도였더라도 ‘난 옳고 넌 틀렸어’라는 사고 회로에 갇히면 그것이 바로 정의 중독 상태이며, 상대방 입장에서 봤을 때 권력형 갑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는 SNS 등에서 나타나는 정의 중독 양상과 비슷하다. 평면적인 관계로 보이는 SNS상의 인맥, 인터넷상의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자신의 생각, 즉 ‘나라면 쉽게 할 수 있는 것’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 ‘내가 잘하거나 잘할 수 있는 것’에다 경험에 근거한 본인만의 정의를 끼워 맞추고 벗어나지 않도록 강요하는 것 말이다.

 

친해진 지 얼마 안 된 시기에는 같은 생각과 같은 정의를 공유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의견이나 가치관, 흥미나 관심사에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때가 있다. 사랑이 미움으로 변하면 미운 감정이 더욱 심해지듯이, 이렇게 되면 일종의 배신감이 들면서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이 한층 증폭되어 강한 어조로 공격하기 시작한다. 회사 내의 인간관계와 다른 점은 서로 책임이 없는 사이라는 것, 현실 세계에서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뿐이다.

 

처음부터 타인, 그리고 스스로에게까지 일관성을 요구하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인간인 이상 언행에 모순이 있는 것은 당연하며 과거에 한 발언과 행동은 얼마든지 번복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절대적인 진실처럼 보이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잘못됐음을 깨달을 날이 올지 모른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 가장 잘 맞는 친구지만, 한 달 뒤에는 더 잘 맞는 친구가 생겨 멀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듯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느낌 때문에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이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처음부터 타인에게 ‘일관성’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그 예는 ‘연예인○○○, 불륜!’이라는 스캔들 기사가 터졌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불륜이 주는 충격은 그 연예인의 이미지가 불륜과 거리가 멀면 멀수록 심하며 비난도 강해진다. 흔히들 ‘청순한 이미지로 봤는데’ ‘그렇게 화목해 보이더니’라고 말하며 비난한다.

 

하지만 원래 성실함, 착실함, 청초함, 자식바보, 잉꼬부부, 친근함, 고학력, 우등생 등의 이미지는 미디어를 통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그 연예인을 실제로 만난 적도 없으면서,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 이미지를 믿는다. 그리고 진실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마치 보도된 기사가 진실인양 받아들인다. 또한 만난 적도 없는 타인에게 자신의 일관성을 적용해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 ‘속았다’며 분노를 표출한다.

 

일단 이렇게 표적이 되어 버리면 다른 가십거리가 나올 때까지 정의 중독자들의 먹잇감이 되어 난도질을 당한다. 생각해 보면, 연예인의 이미지는 일종의 ‘상품’이므로 실제 인간성과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연예인으로서의 대외적인 이미지와 개인으로서의 사생활은 별개다. 그리고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타인의 인생이므로,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미치지 않는 한 설령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했든 가르치려 들거나 비난해선 안 된다.

 

난 개인적으로 범죄 행위가 아닌 한 ‘어찌 되든 상관없는 일’로 본다. 그 연예인을 오랫동안 응원해 온 팬들이 충격받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좋아하지도 않았고(오히려 싫어했을 것이다), 팬도 아닌 사람들이 증오심을 표출하는 것은 정의 중독으로 보아야 한다. 비난받는 그 사건에 사회에 도움이 될 이슈가 들어 있다면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지겠지만, 개인을 공격하여 찰나의 통쾌함을 얻는 것이 전부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대부분 그 순간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시간이 지났을 때 그 일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느껴질 것 같으면 타인에게 일관성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적절한 거리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