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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데 축구가 전부는 아니지만...

시크릿하우스 2021. 8. 6. 09:08

양송희 지음 / 시크릿하우스

“제가 포항 사람인데요. 아버지가 포스코를 다니셔서 어릴 적에는 아버지 회사 부서마다 응원해야 할 포항 선수가 정해졌었어요. 그래서 주말마다 경기장에 가면 부서 직원들이랑 가족들이 모여서 그 선수를 응원했어요. 또 동네 목욕탕에 가면 포항 선수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 그 당시 제 영웅이던 황선홍 선수도 있었어요. 그렇게 자연스레 축구를 좋아하게 됐던 것 같아요.”

 

“어릴 적에 아버지가 2002년 월드컵 포르투갈전 표를 구해오셨어요. 썩 좋은 자리는 아니었지만 그런 역사적인 경기가 제가 사는 인천에서 열렸고, 제가 그 현장에 있다는 것 자체로 감개무량했죠. 그러고 몇 년 뒤에 인천을 연고로 한 프로팀 인천유나이티드가 생겼잖아요? 진짜 좋았죠. 저 수학여행 갈 때 인천 유니폼 입고 갔었어요.”

 

축구 산업에서 일하다 보면 나처럼 정말 축구를 사랑해서 이 일에 몸담게 된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나는 어떤 계기 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자주 묻곤 한다. 대화의 물꼬를 트기도 좋고, 공감도 되고, 또 꽤 재밌는 대화 주제가 된다.

 

내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축구에 빠졌듯이 다들 저마다의 에피소드가 있다. 이 이야기들만 모아 책을 만들어도 재밌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흥미롭다. 그야말로 세 살 축구가 여든 가는 사람들이다. 남들이 보기엔 유별난 축구 사랑일 수도 있고, 또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으니 성덕(성공한 덕후)처럼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일’이라는 게 항상 즐겁기만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축구는 이 세계 사람들에게 가장 큰 동기 부여와 성취감을 준다.

 

나조차도 2002년 월드컵에 우연히 좋아하게 된 축구가 어른이 되어 내 직업으로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어쩌다 보니 삶에서 축구의 영역이 너무 커져서 가끔은 어디까지가 일이고, 어디까지가 취미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만약 내 인생에서 축구가 없다고 가정하면, 내가 알고 있거나 가지고 있는 꽤 많은 것들이 사라진다. 직업부터 시작해서 아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 또 행복했던 기억들. 게다가 영국도 가지 않고, 이 책을 쓸 일도 없지 않았을까.

물론 사는 데 축구가 전부는 아니다. 축구를 보지 않아도 내일의 해는 뜨고, 세상은 굴러간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고 보면 과연 어떤 것이 인생의 전부일까. 애초에 인생에서 전부라는 것은 없다. 이 세상에는 돈, 건강, 사랑, 행복 등 한 사람의 인생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이 수많은 요소들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다만 그중에 특별히 좋아하는 것들이 주로 한 사람의 인생의 대표성을 가지며 때로는 전부였다가, 아니었다가를 반복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축구가 종종 그랬다. 예전에 한 지인이 나에게 축구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항상 축구를 끼고 살면서도, 축구가 나에게 뭔지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축구가 나에게 무엇일까. 나는 ‘내 인생의 가장 큰 동기 부여’라고 대답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잘 보이고 싶고,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스스로를 가꾸고 노력하는 것처럼 나에게는 축구가 그랬다. 축구 관련 일이 하고 싶어서 때로는 맨땅의 헤딩하듯이 무모하게 도전했고, 이왕 하는거 더 잘하고 싶어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 물론 모든 과정이 항상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때로는 사서 고생도 했지만 적어도 축구에 대한 내 사랑이 짝 사랑으로 끝나지는 않아 보람있었다.

 

이렇게 축구밖에 모르면서 감히 말한다.

사는 데 축구가 전부는 아니지만.

 

<저질러야 시작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