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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dare is to do(가장 용감한 것은 도전하는 것이다)

시크릿하우스 2021. 8. 13. 09:34

 

이제 남은 건 토트넘. 사실 더 욕심났던 건 토트넘이었다.

토트넘에서 내가 지원한 직책은 ‘리테일 팀 캐주얼 워커(계약직)’였다. 주요 직무는 토트넘 홈경기나 이벤트가 있는 날에 스토어에서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인터넷으로 지원했던 서류 전형의 자기소개서 항목은 한국이나 영국이나 비슷했다. 지원 동기, 이전 경험이나 경력, 일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 등. 주로 한국 1부리그 구단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점을 어필했다.

 

나는 축구를 굉장히 사랑하고, EPL에서 선진 축구 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영국에 왔고, 팀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어쩌고저쩌고…. 자기소개서 외에도 커버 레터와 이력서를 첨부해야 했고, 이전 경력이나 학력 사항 등 홈페이지에 입력해야하는 정보가 많았다. 다만 한국과 제일 달랐던 점은 사진 제출이 없는 것, 그리고 생년월일을 적지 않는 것이었다. 나이를 체크하는 항목이 있긴 하지만 20~25살, 27~32살, 이런 식으로 자기 나이가 있는 탭을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서류 지원을 마치고 약 열흘 정도 지난 8월 23일, 서류 합격 메일을 받았다. 면접이 9월 3일이었으니 준비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매일 준비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막상 학원 다니고, 숙제하고, 또 집 이사까지 겹치다보니 시간이 빨리감기 한 것 마냥 순식간에 흘러갔다. 면접 준비를 벼락치기 아닌 벼락치기로 하고, 떨려서 심장은 터질 것 같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토트넘 구단으로 면접을 보러갔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못 찾겠네? 구단에서 보내준 주소가 경기장 근처길래 당연히 경기장 안에 있는 사무국에서 면접을 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근처에 와서 주소를 구글맵으로 찍어보니, 자꾸 경기장 건너 편에 있는 이상한 골목길이 나왔다. 혼자 헤매다가 다시 경기장 주변을 얼쩡거리는데, 토트넘 트레이닝복을 입고 가는 남자 둘을 발견하고 다짜고짜 말을 걸었다.

 

“오늘 토트넘 면접 보는 사람인데, 혹시 면접 장소 아니?”

“저기 길 건너에 도미노피자 옆에 남색 문 보여? 저기야.”

“저 간판 없는 남색 건물 말하는 거야?"

”응, 저기야. 아직 면접 시작하려면 멀었는데 너 빨리 왔네.“

 

토트넘 트레이닝복 귀인(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토트넘 직원이었다) 덕분에 무사히 면접 장소에 도착했다. 너무 일찍 와서 아직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To dare is to do(가장 용감한 것은 도전하는 것이다).

 

면접장 벽에 쓰여 있는 토트넘의 슬로건을 보니 마음이 설렜다. 이 슬로건이 그 무엇보다 지금 내 상황을 얘기해주는 것 같았다. 이름표를 나눠주는 구단 직원이 내 이름 위에 Kane(케인)이라고 쓰길래 뭘까 궁금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팀 주장이자 토트넘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하는 선수의 이름이 해리 케인이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 수 있었다.

 

면접 시간인 오후 6시가 다가오자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면접을 보러 왔다. 그 많은 사람 중에 한국인은커녕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당연히 나 빼고 모두 영어 원어민.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첫 번째 세션은 리테일 팀 매니저가 토트넘홋스퍼의 역사와 구단의 철학, 비전 등을 프레젠테이션했다. 리모델링 중인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의 조감도와 영상을 보여주며 유럽에서 제일 큰 규모의 스토어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어찌나 으리으리하고 멋있던지 꼭 저기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커졌다. 첫 번째 세션을 듣는 내내 나 자신이 여기 있다는 자체가 너무 벅차서 마냥 재밌고 설렜다.

 

두 번째 세션은 그룹 미션이었다. 그제야 왜 내 이름 위에 Kane이라고 썼는지 알게 됐다. 그룹 미션에서 내가 해리 케인 조였던 것이다. 먼저 열댓 명 되는 조원들에게 둥글게 모여서 서로 축구공을 패스하라고 했다. 나는 그저 옆 사람들을 따라 하느라 바빴다. 다음에는 조원들의 이름을 외운 뒤, 그 이름을 랜덤으로 호명하며 테니스공을 전달하는 미션이었다. 이 와중에 영국 사람들 이름은 왜 이렇게 어려운지, 원.

 

세번째 미션은 담당자가 어떤 상황을 제시하면 손을 들고 어떻게 대처할지 대답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내가 이 담당자 의 발음을 잘못 알아들어서 대답을 하나도 못했다는 거다. 대망의 마지막 미션은 토트넘홋스퍼의 애칭인 ‘SPURS(스퍼스)’ 라는 다섯 글자로 5행시 짓기였다. 바로 직전 미션에서 한마디도 못 한 걸 만회하기 위해 이 시간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해 열심히 대답했다. 장장 2시간가량 계속된 신박한 면접이 끝났다. 끝난 뒤에도 내가 잘한 건지 못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한국의 면접을 생각하고 단정한 정장 원피스까지 입고 갔는데, 정장 차림으로 축구공을 패스하고 테니스공을 던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이런 경험은 돈 주고도 못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See you later(다음에 봐요).”

면접장을 나가는 길에 총괄 담당 직원이 나에게 인사했다. 다음에 보자는 건… 합격인가? 조금 설렜다. 그리고 다음 날.

 

[retail casual worker]

Dear Songhui Thank you so much for attending the recent First Touch assessment centre, we are delighted to offer you the position of Retail Casual Worker.

 

[리테일 계약직]

양송희 귀하. 토트넘의 면접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토트넘은 귀하에게 리테일 계약직 근무를 제안하게 되어 기쁘 게 생각합니다.

 

합격이라니!!!!!!!!!!!

 

 

<저질러야 시작되니까>(양송희 지음 / 시크릿하우스)

저질러야 시작되니까 - YES24

 

저질러야 시작되니까 - YES24

‘아, 나는 다른 일은 못 하겠구나.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은 축구밖에 없겠구나.’ 인천유나이티드 프런트, 토트넘홋스퍼한국인 스태프를 거쳐, 다시 K리그로… 좋아하는 일을 위해 달리는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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