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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 뉴질랜드에서 원양어선 타기

시크릿하우스 2021. 9. 2. 09:33

만선의 꿈

원양어선을 타는 일.

평소에 극한직업이란 프로그램의 애청자였던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지원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뉴질랜드 안에서 웬만한 정보는 인터넷에 널려 있음에도 이 일에 관해서 만큼은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1년 전에 원양어선 일을 지원했던 한국인을 만났다. 한국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직업 인데다가 본인도 지원을 했었는데 워킹 홀리데이 비자라는 이유로 떨어졌다고 했다. 보통 배가 한번 출항하면 장기간 바다에 머무르고, 일의 강도도 매우 세기 때문에 기간이 제한된 비자를 가진 워홀러들을 꺼려한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 오히려 더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서 지원서를 정말 열심히 썼다. 아마 취업 준비를 하면서 썼던 이력서에 버금갈 만큼의 노력을 들였던 것 같다. 예상 외로 지원서를 제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인터뷰를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결론적으로 인터뷰에 합격해서 원양어선에 오를 수 있었다. 아마 뉴질랜드에서 원양어선을 타는 한국인은 내가 최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냥 신이 난 나는 만선의 꿈을 안고 배에 올랐다.

 

* 일의 강도

 

배에 오르는 순간 ‘나는 반죽음 상태로 내리게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신이 워홀러인데도 구직에 성공했다면 포지션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보길 바란다. 비어있는 포지션은 그만큼 공석이 생기는 이유가 있는 것이고, 배에 오르는 순간 중도 포기는 없으니 신중할 것. 내 포지션은 ‘파운드’였는데, 잡은 생선들을 쌓아두는 임시 저장소라고 보면 된다. 그 저장소에 산처럼 쌓여있는 생선들을 조그마한 구멍으로 빼내서 레일로 보내는 게 일이었다. 보통 한 번에 10톤 정도의 물고기가 잡혀 저장소로 들어온다. 이것들을 빼내려면 입구라고 하기에도 작은 구멍으로 기어들어 가서 물고기 산을 네 발로 기어올라 생선들을 있는 힘껏 발로 까 내린 뒤, 다시 들어왔던 구멍으로 빠져나와 레일을 작동시켜 생선들을 이동시켜야 한다. 이 짓을 보통 5분에 한 번꼴로 해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하는 6시간 내내 숨이 차고 옷은 땀으로, 장화는 물로 젖어 있다. 옷은 빨면 그만이지만 장화는 마지막 날까지 마를 새가 없었다. 차라리 배가 전복돼서 구명보트를 타고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없이 했다.

 

만약 배를 2주 동안 탔다면 배에서 내린 뒤 배를 탄 기간과 같은 2주간의 유급 휴가가 주어지고, 다시 배에 오르는 방식 으로 진행된다. 배를 타기 전에는 “와 최고네!” 하겠지만 일을 해보면 왜 유급 휴가를 주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요양비다. 끝나고 들은 얘기지만 사실 내 포지션은 최소 3명이서 로테이션을 돌려야 하는 포지션인데 이번엔 인원이 부족해서 나 혼자 한 것이었다고 한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워킹 홀리데이, 뉴질랜드에서 원양어선을 타다

* 근무환경 및 수입

 

배는 24시간 풀가동되기 때문에 6시간씩 2교대로 근무한다. 6시간을 일하고 뒷정리, 샤워, 식사를 하고 나면 4시간 반 정도가 남는데, 항상 잠이 부족하므로 모두 잠에 투자해야만 한다. 물론 배가 심하게 요동치기 때문에 도중에 깨는 일이 다 반사이므로 숙면은 불가하다. 그렇게 6시간 휴식 후 다시 6시간 근무. 배에서 내리는 순간까지 휴일 없이 하루 12시간 근무라고 보면 된다. 하루 12시간 근무지만 6시간씩 2교대이다 보니 하루에 샤워를 2번, 취침을 2번 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이틀이 지난 것 같지만 고작 하루가 지난 아주 멋진 경험을 매번 하게 된다. 처음엔 정말 정신 병에 걸리는 줄 알았다.

 

첫날 일을 마치고 나니, 여기서 조금이라도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다면 끝까지 못 갈 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덕 분에 몸 관리를 정말 철저히 했다. 최대한 말은 줄이고, 많이 먹고, 잘 자고. 혹시나 해서 가져간 노트북은 열어보지도 않았고 핸드폰도 거의 만지질 않았다. 물론 핸드폰은 터지지도 않았지만. 내가 탔던 배는 총 40명 정도의 선원이 있었는데 그중 신입은 나를 포함해 딱 3명이었고 나머지는 최소 2년 이상의 경력자들, 슈퍼바이저는 배를 45년 탔다고 했다. 총 40여 명의 선원 중 미얀마인 2명과 나를 제외하면 모두 뉴질랜드 사람이었고, 수년간 같은 팀으로 일 해온 사람들이기에 매우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뱃사람들이라 거친 면이 없지 않지만 다들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보수는 70프로의 기본급과 30프로의 인센티브로 구성되는데, 인센티브의 경우 출항 전 정해진 포획 목표치를 넘기면 플 러스, 그렇지 못하면 마이너스가 된다. 기본적으로 기본급이 매우 적은 편이다보니 생선을 많이 잡아야만 고생에 대한 보 상을 받을 수 있다. 나의 경우 기대치보다 밑도는 금액을 받아 매우 허무했다. 물론 다른 일들에 비해선 많은 금액이지만 말이다. 다만 배를 연속으로 타게 되면 급여가 두 배로 올라간다. 따라서 포획량이 좋은 시기에 배를 연속으로 타게 된다면 꽤나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숙소는 2인 1실 또는 4인 1실을 쓰게 되는데 생각보다 쾌적하다. 각 방에 텔레비전도 설치되어 있는데 난 한 번도 켜본 적이 없다. 침대는 편안하지만 앞서 말했듯 숙면은 불가하다고 보면 된다.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자는 기분이랄까. 식사는 하루 세 끼 모두 뷔페식으로 매우 잘 나온다. 천근같은 몸으로 칼같이 기상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밥이 맛있어서다.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도전?

총평: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고 싶더라도 다른 일을 하기 바란다. 나는 그때 다친 손목으로 여전히 고생 중이다. 몸을 버려도 되고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일의 강도가 낮은 포지션이라는 가정 하에서만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하다.

 

<솔직히 퇴사 후회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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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퇴사 후회하죠? - 교보문고

공기업을 퇴사하고 자발적 백수가 된 서른 살의 이야기 | “언젠가 내가 죽을 때, 못 먹은 밥 보다는 못 이룬 꿈이 생각날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둘 이유보다 더 중요했던 건, 여행을 떠나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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